지난달 하순, 남도의 모 방송국에 업무차 들렀다. 방송국 정원엔 족히 3m가 넘을 동백나무가 여러 그루 서 있었다. 봄날이 가고 여름으로 접어드는 길목이어서 화사했던 동백꽃은 벌써 시들어 추한 얼굴을 푸른 이파리에 가리고 있었다.
동백꽃이 피고 지면 열매를 맺는다. 예로부터 이 땅의 사람들은 그토록 붉었던 그 꽃을 봄날의 순정으로 여겼다. 자연의 순리에 따라 그 꽃이 시들어 맺힌 열매의 씨앗에서 기름도 짜냈다.
방송국 정원에 껑충하게 서 있는 동백나무를 몇 그루 살펴보았다. 시든 꽃에서 열매가 맺혔는지 보고 싶었다. 동백꽃이 땅바닥에 낭자하게 떨어지고 나면 으레 동백나무 가지엔 불그스름한 열매가 맺힌다. 방송국 정원의 동백나무도 자연의 순리에 따라 꽃을 열매로 바꾸는 조화를 부리는 중이었다.
방송국 현관문 앞엔 몇 개의 분재가 놓여 있었다. 그중 하나는 올리브 분재로 수령은 5백 년, 판매가는 6천만 원이었다. 그 옆에 있는 분재는 수령이 50년, 판매가도 꽤 비쌌다. 수령이 5백 년이나 된다는 올리브 분재는 그 용모와 모양이 빼어났다. 몸통은 굵고 높이는 낮은데 흡사 괴목 같은 몸통에서 자라난 잔가지는 신비감을 불러일으켰다. 여러 갈래의 잔가지에 붙은 올리브 잎들도 내 시선을 붙들었다.
전북 부안의 외딴섬 위도는 내 고향이다. 위도 해안도로 가로수의 주종은 벚나무다. 가로수의 일부는 위도산 동백나무다. 내 탯자리가 있는 위도 대리마을은 국가무형유산인 위도띠뱃놀이 전승지다. 대리마을 뒷산의 산 이름은 ‘까끔’. 이 산엔 특히 상록수가 울창하다.
오지 낙도라는 특수성을 감안할 때, 까끔은 비교적 높고 넓은 산이다. 그런데도 이 산의 주인은 따로 없다. 군유지로 마을 주민들이 공동으로 관리를 해 온 산이다.
197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위도의 가정 대부분은 산에서 구한 땔감으로 겨울철 난방을 하고 아궁이의 불을 지폈다. 그런 시절에도 대리마을 주민들은 까끔에 올라가서 땔감을 구하지 않았다. 아니 구하지 못했다. 추정컨대 최소한 100여 년 넘게 까끔은 주민들이 공동으로 가꾸고 관리한 대리마을의 성산(聖山)이자 영산(靈山)이기 때문이었다.
까끔엔 위도를 대표하는 상록수림이 있다. 키도 크고 몸통도 굵은 동백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때를 맞으면 풍란(風蘭)도 이곳저곳에서 난향을 품어낸다. 이 밖에도 섬지방 특유의 풀과 나무 여러 종이 자생하는 까끔을, 나는 위도 육상 생태계의 보고라 여긴다.
수십 년 전의 일인데, 위도엔 외지 불법 채취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오랫동안 은밀하게 진행된 과도한 불법 채취로 인해 위도의 풍란은 절명 위기에 처했고, 분재로 키울만한 풀과 나무는 거의 뿌리가 뽑혔다.
안타까운 것은 내 고향 위도 주민들 역시 불법 채취를 서슴지 않았다는 점이다. 외지 불법 채취꾼들의 비행을 알고도 묵인하는 사람도 있었다. 숙박업을 하거나 낚싯배를 대여하자니 고향의 자연 자원이 육지로 불법 유출되는 걸 방조하는 경우도 있었다.
위도의 풍란 군락지와 희귀한 풀과 나무들, 누가 망치고 누가 캐간 것일까. 사정이 이런 곳이 어디 위도뿐이랴. 우리나라 여러 섬의 해양 생태계는 물론 육상 생태계도 망가진 지 오래다.
서주원
G.ECONOMY ESG전문기자
前 KBS 방송작가
소설가
ESG생활연구소 상임고문
월간 ‘할랄코리아’ 발행인
독도문화연대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