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일엔 전 국민이 마음을 졸이며 수능생들을 위해 뭐라도 해야 할 거 같은 그런 마음이 듭니다. 이웃에 지인의 딸이 수능생으로 있어서 수능장까지 데려다주는 역할을 맡게 되어 같이 긴장하고 어둑어둑한 학교에 일찍 도착했습니다.
막상 도착해서 보니 주변을 지키는 경찰관들이 제지하며 아침 7시가 되어야지만 들어갈 수 있다고 안내했습니다. 아, 20분 이상 어디서 기다려야 하나, 차를 가지고 이리저리 천천히 주변을 돌고 돌다가 수능장소 바로 옆학교 정문 앞에 차를 세우고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아직 해가 온전히 떠오르지 않았지만, 부모들의 마음이 실린 자동차들이 한두 대씩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새벽 공기엔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습니다. 아이에게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막상 입을 열면 부담이 될까 싶어 조심스러웠습니다. 그저 조용히 운전대를 잡고 모두의 숨소리만 느끼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가기를 기다리는 중 바리케이드가 열리며 어르신 한 분이 마스크를 하고 내 차 앞으로 다가와서 학교 운동장에 주차하라고 친절하게 권해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운동장에 잘 주차하고 창을 열어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했더니 어르신이 창가로 다가와 “아가야, 오늘 시험 보러 왔어? 힘내라 치어스!” 하고 마스크 너머로 밝고 경쾌한 음성으로 응원의 메시지를 남기고 총총히 사라지셨습니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그 장면은 마치 찬 공기 사이로 하나의 따뜻한 빛이 스며드는 것 같았습니다. 다른 날도 아니고 수능일이다 보니 이 어르신의 따스한 한마디가 방금 끓여낸 따뜻한 국을 맛있게 먹은 후 느낌이 들어 든든했습니다. 그 짧은 외침이 아이뿐 아니라 저에게도 전해지고 함께 있는 그 아이의 엄마에게도 가슴 깊은 곳까지 환하게 밝혀주었습니다. 분명 오래 일하신 세월의 흔적이 묻어 나오지만, 따스한 응원은 누구보다 젊고 생기 있었습니다. 마치 모든 아이가 자신의 손주인 것처럼, 시험장으로 들어가는 아이들의 떨리는 어깨를 대신 감싸주고 싶다는 마음이 담겨 있는 듯했습니다.
그 순간, 저는 문득 ‘어른’이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나이를 먹으면 자연스럽게 어른이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마음도 함께 자라는 건 아니더군요. 어른이 된다는 건 단순히 나이를 먹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따뜻함을 건네고, 그 사람의 하루를 조금 더 밝게 만들어주는 일을 스스로 선택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경비 할아버지는 그 일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하고 계셨습니다. 시험을 보러 온 아이들이 어떤 마음인지, 그 부모들이 어떤 마음으로 차에서 아이를 내려놓는지, 그 모든 감정을 알고 계신 듯했습니다. 그래서 더 따뜻한 말, 더 힘이 되는 외침을 건네셨던 것이겠지요. 나는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나도 저렇게 나이 들고 싶다. 머리카락은 희어지고, 손에 주름이 더해져도, 누군가에게 응원이 되고 싶은 어른. 누군가의 하루에 ‘작은 용기’를 더해줄 수 있는 그런 어른 말입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데려다줄 때와 마음이 전혀 달랐습니다. 아이를 향한 걱정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마음 한쪽에 할아버지의 응원처럼 따뜻한 감정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세상에는 아직 이렇게 아름답게 나이 드는 어른이 있다”라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 어떤 힘이 되는지를 직접 본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응원을 마음에 새기며, “아가야, 힘내라! 치어스!” 이 한마디가 누군가의 마음에 작은 빛으로 남기 바랍니다.
따스함이 그리워지는 시간, 연말입니다.

강윤정
마중물교육파트너스 대표
평생교육 석사
시니어 TV 특강강사
인문학 맛있는 고전 진행자
웰라이프 및 웰다잉 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