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크골프장 조성, ‘세대·공간 갈등’ 격화…“수요 대응 아닌 공존 설계가 해법”

  • 등록 2025.07.07 09: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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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이코노미 이창호 기자 | 파크골프가 고령층과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새로운 대표 생활 스포츠로 자리 잡았다. 2020년 254곳이던 전국 파크골프장 수는 올 상반기 420여 곳으로 늘었고, 같은 기간 대한파크골프협회 등록 회원 수도 약 4만 5,000명에서 20만 명에 육박하며 4배 이상 증가했다. 지자체는 주민 체육복지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인프라로 활용하고자 파크골프장 건립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세대 간 갈등, 도농 간 불균형, 환경훼손 논란 등 복합적인 사회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

 

 

노년층 “병원보다 파크골프장이 낫다”…이용 수요 폭증

 

파크골프는 일반 골프장보다 코스가 짧고, 하나의 파크골프채로 경기를 즐길 수 있다. 근력이 떨어진 고령층에 안성맞춤이다. 입장료도 대체로 5,000원 미만으로, 장비와 비용 부담이 적은 것이 큰 장점이다.

 

서울 강남구 탄천 파크골프장은 3개 코스 총 27홀로 서울 최대 규모이다. 주말은 말할 거도 없고 평일에도 입장 전쟁이 벌어진다. 68세 최경숙 씨는 “이 나이에 이렇게 땀 흘리며 웃을 일이 별로 없다”라며 “주변 친구들과 매일 나오는데, 건강도 좋아지고 우울감도 사라진다”라고 말했다. 그는 “경쟁이 너무 치열해서 새벽에 알람 맞춰 와야 입장이 가능하다”라고 덧붙였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해 6월 2026년까지 서울 시내 77곳에 700홀의 파크골프장을 조성하겠다고 약속했다. 서울시는 최근 수요가 몰리는 현황을 반영해 5~6홀 규모의 ‘미니 파크골프장’ 설치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수도권과 지방 지자체 모두 공원 및 유휴 공간 활용을 모색 중이다. 전남 화순, 경남 창원, 충남 청양, 대구 군위 등은 90홀에서 180홀에 이르는 국내 최대 규모 파크골프장 타이틀을 두고 경쟁하고 있다.

 

 

“아이들 뛰놀 공간까지 차지하나” vs “왜 노년층만 배제하나”

 

파크골프장 조성이 환영 일색만은 아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격렬하게 찬반이 엇갈린다. 특히 젊은 층을 중심으로 “주민 모두가 즐기는 녹지 공간이 특정 세대를 위한 특정 스포츠의 전유물이 되는 건 아니지 않느냐”라는 불만도 커지고 있다.

 

파크골프장을 둘러싼 갈등은 지난해부터 본격화됐다. 지역에 따라 갈등 양상이 달랐는데, 서울 등 도심권은 공간활용 문제와 세대 갈등, 지방은 환경 및 법적 절차 위반 문제로 첨예하게 대립했다.

 

2024년 6월, 서울 동작구 대방공원에서는 9홀 규모의 파크골프장 조성계획이 발표되자 “아이들 놀 공간이 사라진다”며 학부모 중심의 반발이 확산됐다. 예정됐던 공청회는 취소되었고, 사업은 사실상 중단됐다. 같은 시기, 서대문구 백련근린공원에 계획된 파크골프장도 2,000명 이상의 주민 반대 서명으로 무산됐다.

 

서울 마곡 일대에서도 기존 공원 녹지 일부를 활용한 파크골프장 계획이 수면 위로 올라오자, 청년층과 환경단체 중심의 반대 서명이 이어졌다. 구의회에서 예산안이 부결되며 계획은 전면 재검토 단계에 들어갔다. 한강변을 활용한 서울시의 ‘미니 파크골프장 분산 전략’에 대해서도 한강 생태 보전과 시민 접근권을 둘러싼 이견이 여전히 존재한다.

 

강원 원주시는 섬강변 18홀 규모의 파크골프장을 36홀로 증설하려는 계획을 내놨지만, 인근 주민 단체가 소음과 교통혼잡, 환경 훼손을 이유로 반대했다. 일부 주민은 시청 앞에서 1인 시위를 이어가기도 했다. 해당 지역은 인근 주거단지와의 거리, 기존 하천 산책로와의 연계 등 공간 구조 문제까지 제기되며 논란이 번졌다.

 

전북 익산, 충북 청주 등에서는 유휴 농지 활용을 둘러싼 논쟁도 벌어졌다. 한때 방치된 논과 밭을 활용해 파크골프장을 조성하려는 계획이 있었으나, 농업계는 “농지 전용 기준 완화는 생계 기반을 흔든다”라며 조직적으로 반대했고, 일부 지자체는 계획을 백지화하거나 축소 조정했다.

 

2024년 8월, 서울시 25개 자치구로 구성된 서울 구청장협의회는 한강변 유휴부지 활용 확대를 위해 파크골프장 설치를 허용해달라는 공동 건의문을 환경부에 제출했다. 하지만 환경단체와 일부 시민단체는 도시 생태계 훼손과 편중된 자원 배분을 지적하며 공개 반대 성명을 내고 서울시청 앞에서 반대 기자회견을 열었다.

 

 

생태 훼손 우려… “제초제 뿌리고 산사태 나면 책임질 건가”

 

올해 들어서도 파크골프장 조성을 둘러싼 갈등은 여전하다. 대표적으로 서울 강남구 대모산에 조성 예정이던 파크골프장은 자연 훼손 논란으로 진통을 겪고 있다. 대모산은 서울 도심 내 드문 원시림이 보존된 구간으로, ‘강남의 허파’로 불린다.

 

공사 계획이 알려지면서 인근 개포동 주민들을 중심으로 “산을 깎고 주차장을 만든다”, “제초제를 뿌리면 산사태 우려가 있다”라는 등의 이유로 반대가 이어졌다. 개포 5단지 개포자이프레지던스 아파트에 사는 이연주(45세) 씨는 “대모산은 아이와 함께 등산도 하고 산림욕도 하던 소중한 공간”이라며 “그곳에 인공 시설이 들어서면 환경은 돌이킬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찬성 측도 만만치 않다. 대한노인회 강남지회와 5개 단체는 “대모산은 특정 단지의 사유지가 아니라, 강남구 전체 주민을 위한 공공 산림”이라며 “노년층의 건강권을 지켜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구청 앞에서 규탄대회를 열고 조속한 추진을 요구하고 있다.

 

강남구는 해당부지에 대해 토양, 수질, 잔류 농약 등 환경 안전성 검사 결과 모두 ‘적합’ 판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또한 “제초제 사용은 하지 않고, 인공 구조물도 최소화하는 친환경 설계 방침을 세웠다”라고 설명했다.

 

서울 마포구의 월드컵공원 인근에는 최근 기존 캠핑장 일부 부지에 파크골프장을 조성하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이에 대해 어린 자녀와 함께 캠핑장을 찾은 박선우(39세) 씨는 “서울에서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장소가 얼마나 되나. 그마저도 골프장으로 바뀌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라며 불만을 드러냈다. “공원은 모두의 공간이어야지, 특정 연령대에만 맞춰선 안 된다”라는 주장이다.

 

물론 반론의 목소리도 높다. 김성래(71세) 씨는 “그동안은 노인들이 갈 곳이 없었고, 그저 공원 벤치에 앉아 있어야 했다”라며 “이제라도 운동하고 건강 챙길 공간이 생기는 건 늦었지만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을 위한 공간은 따로 마련하면 되지 않느냐”라고 강변했다.

 

 

조율 해법은?… “미니 시설·공유 공간·시간 분할 운영 필요”

 

전문가들은 갈등을 줄이기 위한 실질적인 대책으로 공청회, 공유 공간 활용, 시간대별 운영 등을 제시한다. 체육시설 하나를 두고 세대가 싸우는 일은 공공 설계의 실패라고 지적한다.

 

경기도 성남시는 이런 갈등을 줄이기 위해 축구장 주변 유휴지에 이동형 파크골프 타석을 설치해 스포츠 공간을 공유하도록 했다. 축구와 골프의 사용 시간을 분리하고, 잔디 훼손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조율에 성공했다. 주민들의 만족도도 높다.

 

서울시는 도심 내 자투리와 하천변 공간 등을 활용해 5~6홀 규모의 미니 파크골프장을 분산 설치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한 곳에 대규모 시설을 집중하지 않음으로써 생태 부담과 주민 반발을 줄이겠다는 전략이다.

 

 

파크골프장, 수요 대응에서 공존 설계로 가야

 

전문가들은 현재의 파크골프 갈등이 단순히 “늘어나는 수요를 충족”이란 접근 방식에 기인한다고 분석한다. 고령 인구가 증가하면서 지자체들은 노년층 복지 차원에서 시설 확충을 서둘렀지만, 그 과정에서 ▲사전 공론화 부족 ▲환경영향평가 미흡 ▲세대 간 공간 인식 차이 등을 간과했다는 것이다.

 

정부 차원의 가이드 라인도 사실상 부재하다. 문화체육관광부나 환경부 차원의 통합 기준이 없다 보니, 각 지자체가 독자적으로 추진하면서 기준의 편차가 크고, 지역 갈등이 확산하는 양상이다. 국토부의 도시공원법, 농림부의 농지법, 환경부의 하천법 등 다양한 법률이 얽혀 있어, 부처 간 협의체 구성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크다.

 

정책적으로는 다음 세 가지 방향이 핵심 대안으로 제시된다. 먼저, 공공 설계단계에서의 주민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 사전 공청회와 의견 수렴 절차를 의무화해 정책 신뢰성을 높이고, 갈등 비용을 줄여야 한다.

 

미니 파크골프장 및 다기능 공간화도 필요하다. 도심 내 대형 시설이 아닌, 5~6홀 규모의 소규모 분산형 시설을 통해 자연 훼손을 줄이고, 시간대별 다중 활용 방안을 병행해야 한다.

 

국가 차원의 설치 기준 및 인허가 지침도 마련해야 한다. 환경영향평가, 지역균형지표, 세대 수요분석 등을 포함한 통합 가이드 라인을 제시해 지자체 간 형평성을 확보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누구를 위한 체육시설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할 필요가 있다. 파크골프장이 특정 세대의 전유물이 아닌 전 연령대의 공공 자산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이를 위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것이 정책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이창호 기자 golf003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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